유관순은 공주교도소에 갇혔습니다. 그곳에서 그녀는 공주에서 만세 운동을 주도하다 체포된 친오빠 유우석을 만났습니다. 서로 많은 말을 나누지는 못했지만, 부모를 잃고 옥중에서 만난 두 사람의 마음속에는 같은 생각과 각오가 자리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녀는 공주교도소에서 모진 고문을 견디면서도 본인이 시위의 주동자이니 죄 없는 사람들은 석방하라고 호통쳤습니다.
법정에 선 유관순은 “나는 한국 사람이다. 너희들은 우리 땅에 와서 우리 동포들을 수없이 죽이고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죽였으니 죄를 지은 자는 바로 너희들이다. 우리들은 너희들에게 형벌을 줄 권리는 있어도 너희들은 우리를 재판할 그 어떤 권리도 명분도 없다.”라고 하며 기개를 잃지 않았습니다. 유관순은 일제의 재판권 자체를 인정할 수 없다며 상고를 거부했고, 로 이감됐습니다. 이곳에는 나이와 성별을 불구하고 만세 운동을 벌이다 잡혀 온 이들로 가득했습니다. 그녀는 이곳에서 갇힌 몸으로도 무언가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계속되는 탄압에도 멈추지 않고 여러 차례 ‘대한 독립 만세’를 부르짖었습니다. 몸은 갇혔을지언정 마음은 계속해서 자유를 외치고 있었습니다.
1920년 3월 1일, 유관순은 3·1 운동 1주년을 맞아 수감 중인 동지들과 함께 옥중 기념식을 열고 다시 한번 옥중 만세 운동을 벌였습니다. 당시 3천여 명의 수감자들이 그녀를 따라 만세를 외쳤습니다. 그들의 함성은 형무소 밖까지 이어졌고, 거리를 지나던 전차에서도 들릴 만큼 강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