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4. 아우내 장터를 뒤덮은 만세의 함성

고향으로 돌아온 유관순은 곧바로 지역 만세 운동 준비에 나섰습니다. 그녀는 아버지와 마을 어른들에게 서울에서 목격한 3·1 운동의 소식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품 안에 몰래 가져온 독립 선언서를 보여 주며 “삼천리강산이 들끓고 있는데 우리 동네만 잠잠할 수 있습니까?”라고 운을 떼며, 아우내 장터에서 만세 운동을 벌이자고 제안했습니다. 유관순과 그녀의 사촌 언니는 주민들이 사용할 태극기를 직접 만드는 일을 맡았습니다. 밤마다 등잔불 아래에서 천을 자르고 붓으로 태극 문양을 그려 넣었습니다. 그 시각 주민들은 서로서로 만세 운동 소식을 전하며, 뜻을 모았습니다.

4월 1일, 3천여 명의 사람들로 가득한 장터에는 긴장감이 맴돌았습니다. 유관순은 직접 만든 태극기를 사람들에게 나눠 줬습니다. 약속한 정오가 되자 유관순은 군중 앞에 서서 “우리는 10년 동안 나라 없는 백성으로 온갖 압제와 설움을 참고 살아왔지만 이제 더는 참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나라를 찾아야 합니다. 지금 세계의 여러 약소민족들은 자기 나라의 독립을 위해 일어서고 있습니다. 나라 없는 백성을 어찌 백성이라 하겠습니까. 우리도 독립 만세를 불러 나라를 찾읍시다!”라며 열변을 토했습니다. 장터는 독립을 향한 열망으로 달아올랐습니다.

하지만, 머지않아 이 소식은 일본 헌병과 경찰의 귀에 들어갔습니다. 이들은 시위대를 향해 무자비하게 총을 쏘고 칼을 휘두르며 공격을 가했습니다. 그 모습에 항의하던 유관순의 부모님도 일본 헌병의 공격을 받아 목숨을 잃었습니다. 유관순은 쓰러진 부모님을 끌어안고 오열했습니다. 아우내 만세 운동 과정에서 유관순의 부모를 포함한 19명이 순국했고, 30여 명이 큰 부상을 입었습니다. 유관순의 분노는 극에 달했습니다. 유관순은 숙부와 함께 헌병 주재소로 찾아가 “나라를 되찾으려고 정당한 일을 했는데 어째서 총기를 사용하여 내 민족을 죽이느냐!”며 거세게 항변했습니다. 결국 그녀는 만세 운동의 주동자로 체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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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7 내가 유관순과 그녀의 사촌 언니였다면 만세 운동을 위해 어떤 준비를 했을까요?
  2. 8 유관순이 부모를 잃은 슬픔 속에서도 독립을 위해 계속 싸워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무엇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