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 1919년 3월, 독립의 외침

1919년 1월 21일, 고종 황제의 서거 소식이 전해지자 나라 전체가 큰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일본 도쿄에서는 한국 유학생들이 독립 선언서를 발표하며 시위를 벌였고, 33인의 민족 대표는 만세 운동을 통해 독립 의지를 전 세계에 알리고자 숨 가쁜 준비를 이어갔습니다. 그 시각 이화학당 학생들도 독립을 향한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유관순은 서명학, 김복순, 김희자, 국현숙과 함께 ‘5인의 결사대’를 조직하여 만세 운동에 참여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마침내 1919년 3월 1일, 덕수궁 앞은 고종 황제의 마지막을 보기 위해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들로 발 디딜 틈 없었습니다. 민족 대표들은 계획대로 태화관에 모여 독립 선언문을 발표했습니다. 한편 탑골 공원에서는 독립 선언식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5인의 결사대도 소복을 입고 기숙사에서 몰래 빠져나왔습니다. 이들은 사람들 틈에서 대한문 앞을 지나는 고종의 장례 행렬을 지켜보며, 남대문 방면 시위에 합류했습니다. 거리 시위에 참여한 수천 명의 사람들은 일제히 품속에서 태극기를 꺼내 흔들며, 목이 터져라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습니다. 유관순은 평화적인 시위 속에 몸을 맡기며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3·1 운동 이후 학생들의 시위 물결은 더 거세졌습니다. 이화학당은 학생들이 시위에 참여할 것이라는 소식을 듣고 일찍이 교문을 잠갔으나, 여기에 굴할 유관순이 아니었습니다. 3월 5일, 유관순은 학교의 제지를 뿌리치고 학생들이 앞장선 학생 연합 시위에도 참여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여러 학생이 체포됐고, 유관순도 예외가 아니었으나 곧 석방됐습니다.

학생들의 움직임이 거세지자 는 3월 10일, 전국에 휴교령을 내렸습니다. 학교에 다닐 수 없게 된 유관순은 기차를 타고 고향으로 내려갔습니다. 이때 전해지는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함께 기차를 타고 가던 친구들이 기차 소리가 “동전 한 푼, 동전 한 푼”으로 들린다고 말하자, 유관순은 “대한 독립, 대한 독립”으로 들린다고 말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일화는 유관순의 마음속에는 오직 독립에 대한 생각이 가득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 줍니다.
함께 생각해 보기
  1. 5 유관순이 5인의 결사대를 만들 때 만약 친구들에게 의지를 다지는 한마디를 했다면 어떤 말이었을까요?
  2. 6 기차 소리를 ‘대한 독립’으로 들었다는 유관순처럼 내가 요즘 듣는 노래나 소리 중에 인상 깊은 것과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