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0년, 세종은 54세의 나이로 창덕궁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의 관은 경기도 여주로 옮겨졌고, 현재는 영릉(英陵)이라 불리는 곳에 잠들어 있습니다. 세종은 말년에 안질로 시력이 거의 사라졌고, 당뇨까지 앓아 몸이 크게 쇠약해진 상태였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건강보다 백성의 삶을 먼저 걱정했습니다. 병상에 누운 채로도 신하들에게 국정 전반을 묻고, “백성의 근심이 곧 나의 근심이다. 내가 편히 쉬면 누가 그들을 돌보겠는가.”라고 말했을 정도입니다. 이러한 세종의 애민 정신은 한글 창제와 같이 눈에 보이는 수많은 업적을 넘어, 그의 가장 위대한 유산으로 남아 있습니다.
1997년, 유네스코는 세종대왕 문해상을 제정했습니다. 이 상은 문맹 퇴치에 이바지한 단체에 수여되며, 백성을 위해 문자를 창제한 세종의 애민 정신이 세계적으로 인정받았음을 보여 주는 상징적인 사례이기도 합니다.
세종은 단순히 지식을 쌓은 군주가 아니라, 배움과 실천으로 백성을 섬긴 지도자였습니다. 그의 정신은 지금도 우리 사회 곳곳에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