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은 즉위 직후부터 ‘백성의 마음을 듣는 정치’를 강조했습니다. 한 사람의 생각만으로는 나라를 다스릴 수 없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1420년, 세종은 학자들이 자유롭게 연구하고 토론할 수 있도록 집현전을 설치했습니다. 에는 정인지, 박팽년, 성삼문, 신숙주 등 젊고 유능한 학자들이 모여 국가의 미래를 고민했습니다. 세종은 직접 집현전을 찾아가 학자들과 밤늦도록 토론을 나누기도 했습니다.
세종은 두려움으로 다스리는 나라는 오래가지 못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태종 때의 가혹한 형벌을 완화하고, 보다 공정한 법체계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의 기초를 마련하면서도 형벌을 정할 때는 죄의 무게뿐 아니라 백성의 삶의 사정을 함께 살피도록 했습니다. “부유한 자보다 가난한 자를 먼저 헤아리라.”는 말이 기록으로 남아 있을 정도입니다.
세종은 음악도 정치의 중요한 요소로 여겼습니다. 음악이 국가의 질서와 백성의 정서를 바로잡는 힘을 가진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중국의 아악과 조선의 향악을 조화시켜 정악 체계를 정비했고, 지방의 민요를 수집해 궁중 음악에 반영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세종은 병든 백성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향약집성방』을 편찬해 조선의 약재와 치료법을 정리했고, 추운 겨울에는 거리의 노인과 아이들을 살피게 하며 솜옷과 곡식을 나누게 했습니다. 이렇듯 세종의 정치는 늘 백성에 대한 자비와 이해를 바탕에 두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