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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자락에 자리한 다르질링은 홍차 재배를 위한 최적의 환경을 자랑합니다. 연중 서늘한 기후와 적정한 강수량을 유지하기 때문인데요. 이 자연 조건 덕분에 다르질링 홍차는 스리랑카나 중국 등지에서 나는 홍차와는 또 다른 매력을 자아냅니다. 다르질링 홍차는 “홍차계의 샴페인”이라고 불릴 정도로 특유의 꽃향기 그리고 은은한 청포도(머스캣) 향을 내는데요. 그래서 전 세계 차 애호가들이 즐겨 찾는 품종 중 하나입니다.
다르질링 홍차 생산은 아직도 전통적인 방식을 고수하고 있는데요. 차의 풍미와 품질을 높이기 위해 손수 찻잎을 따고, 자연적으로 발효하는 인고의 과정을 거칩니다. 이 때문에 생산량이 한정적이고, 가격도 높은 편이죠.
하지만 이 세계적인 홍차 이면에는 차밭 노동자들의 현실이 가려져 있는데요. 오늘은 그 이야기를 전해 보려고 합니다!

다르질링 전경이 한 폭의 그림처럼 내려다보이는 숙소에서 단연 눈에 띄는 곳은 너른 차밭이었습니다. 그곳을 바라보며 직접 차밭을 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체 어디로 가야 제대로 된 차밭을 만날 수 있을까? 차밭을 가기 위해 숙소 주변을 무작정 걸어 다녔지만 아무 밭이나 견학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현지인들에게 물어보니 모두가 하나같이 ‘해피 밸리’라는 곳을 추천했습니다. 해피 밸리라니…… 왠지 듣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이름이었습니다.
머무는 숙소에서 해피 밸리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지만 산악 지형을 오르락내리락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택시를 타고 가려 했지만 기사마다 부르는 게 값이었습니다. 결국 우리는 합승 택시를 타기로 했습니다. 합승 택시는 여러 명이 함께 이용하는 수단으로, 정거장에서 기사에게 일일이 도착지를 물어본 뒤 타야 했습니다. 많은 택시들 가운데 어떤 것이 해피 밸리행인지 알 수 없어 한참을 헤매다 그곳을 지난다는 차를 겨우 만날 수 있었습니다. 차 안은 이미 사람들로 가득했습니다. 낯설었지만 우리는 금세 친구가 되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옆자리 어르신은 외지인인 우리에게 먼저 친근하게 인사를 건넸고, 본인은 친구의 장례식에 가는 길이라고 말했습니다. 짤막한 대화가 끝나고, 우리는 그에게 늘 건강하라는 인사를 건넨 뒤 목적지에 내렸습니다.
청량한 초록의 물결 속에 눈이 트이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맑은 공기는 우리의 폐를 부풀게 했습니다. 차밭으로 내려가는 길, 만나는 현지인들이 환히 웃으며 “나마스떼” 하고 인사를 건넸습니다. 시끄러웠던 경적은 멀어지고, 새소리가 가까워졌습니다.
해피 밸리는 다르질링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차 농장으로, 1854년에 설립된 곳입니다. 80년 된 차 나무부터 많게는 150년에 이르는 고목들이 177㏊에 걸쳐 넓게 분포해 있습니다. 이곳에서 일하는 직원만 1,500명에 이른다고 하니 농장의 규모가 얼마나 큰지 가늠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르질링의 홍차는 언제부터 시작됐을까요? 1820년대 초, 영국 동인도 회사는 인도의 차 재배를 확대하려고 했습니다. 당시 중국이 차의 최대 생산지였는데, 중국 차 독점에 의존하지 않고 자체 차 산업을 키우려는 목적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동인도 회사는 히말라야 해발 2,000m에 위치한 다르질링이 기후와 토양 조건 측면에서 차 재배에 적합하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1841년, 동인도 회사는 원래는 차를 키우지 않던
이 지역에 처음으로 중국 품종의 차 나무를 심기에 이르렀습니다.
처음에는 생각만큼 차 재배가 잘되지 않아 여러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습니다. 다르질링에 대규모
차 농장이 들어서기 시작한 것은 1850년대부터였습니다. 차 재배와 가공을 위해 영국인의 관리하에 인도인이 노동하는 구조가 생겨났습니다.
다르질링 홍차는 점차 영국 내에서 고급 차로 인기를 끌기 시작했습니다. 19세기 후반부터는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습니다. 특히 영국 왕실과 귀족들 사이에서 사랑받으며 고급 홍차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상황이 이러하자 세계 시장에는 가짜 다르질링 홍차도 판을 쳤습니다.
이를 용인할 수 없었던 인도 정부는 2004년,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차에만 ‘다르질링’이라는 이름을 사용할 수 있도록 지리적 표시(GI)를 등록했습니다.

천천히 산책하며 차밭을 구경했습니다. 히말라야의 바람과 기운을 맞으며 호연지기를 길렀습니다. 그러다 차밭에서 찻잎을 따고 있는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대부분 여성이었는데, 삼삼오오 짝을 이뤄 찻잎을 따고 계셨습니다. 힘든 일상이지만 얼굴에서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습니다. 관광객인 우리 일행을 향해서도 환하게 웃어 보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들의 웃음 뒤에 감춰진 씁쓸한 노동 현실에 마음이 쓰였습니다.
다르질링 차밭의 노동자들은 거의 쉬지 않고 하루하루 힘들게 일한다고 합니다.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손수 찻잎을 따는 일을 멈출 수가 없습니다.
보호 장비가 제대로 제공되지 않아 작업 도중 다칠 위험도 적지 않습니다.
문제는 이들이 고생 끝에 받는 돈이 매우 적은 것도 모자라 일정치도 않다는 것입니다. 하루 평균 250루피(한화 4,000원 정도)를 받아 가는 수준입니다.
이는 인도 내 다른 지역이나 산업에 비해 훨씬 낮은 수준입니다. 이른 아침부터 늦은 오후까지 하루 종일 일하며 받는 대가가 터무니없다는 것을 알고 나니
화가 치밀었습니다. 여성 노동자들은 성차별과 낮은 임금 문제에 더욱 취약한 상황입니다. 이 농장 직원들 대부분은 농장에서 마련해 주는 집에서 삽니다.
그런데 이 집들도 오래된 목조 주택인 데다 여러 가구가 공동 화장실을 사용하는 열악한 구조라고 합니다.
차밭 노동자들은 힘든 삶을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 많은 돈을 자식의 교육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높아지는 교육비를 감당하려다 보니 더 많은 돈이 필요하고,
그러다 보니 더 강도 높은 노동을 이어가는 실정입니다. 임시직이나 계약직 형태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는 더더욱 버거운 현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세계적인 홍차의 명성 이면에 왜 이런 문제가 생기는 것일까요? 과거 다르질링 차밭 산업이 번성할 당시 노동 구조가 그대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농장 내부에서 주거하고 노동하는 종속적 노동관계가 지금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또 다르질링 홍차가 세계 시장에서 높은 가격에 판매된다고 해도 실제 차밭
노동자들에게 돌아가는 몫은 매우 적기 때문입니다.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호하는 법과 제도가 미흡한 상황도 문제를 심화하는데 한몫합니다.
이러한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을 위해서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정부의 노력과 더불어 우리의 관심도 필요합니다. 실제로 ‘공정 무역(Fair Trade) 인증 제품’을 소비하는 것만으로도 일정 부분 도움이 됩니다. 공정 무역 인증 제품은 제품의 가격이 낮아져도 생산자에게 최소한의 금액이 돌아갑니다. 또 안전한 작업 환경, 아동 노동 금지, 성별 임금 차별 금지 등 기준에 부합하는 노동 조건을 갖춰야만 인증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이 제품을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노동 환경 개선에 이바지할 수 있는 셈입니다.
지금도 종종 다르질링 차밭 노동자들의 모습이 선연합니다. 우리는 어떤 환경에서 일해야 할까? 어떤 방식으로 소비하는 것이 좋은가? 오늘의 이야기가
우리 안의 ‘사회적 책임’을 건드리는 계기가 되었기를 바랍니다.
- 김재우 선생님 반포중학교
- 중·고등학교에서 다년간 체험활동을 담당하고 있는 국어 교사 김재우입니다.
여행을 좋아하며, 특히 아이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창의 활동을 좋아합니다.
‘재우쌤의 창의여행’은 교실을 벗어나 풍부한 감성과 경험을 쌓고 교과 융합 수업을 맛볼 수 있도록 테마를 소개합니다.
딱딱한 학습보다 재미있게 공부하며 스스로 익힐 수 있도록 구성하였고, 흥미 위주의 여행보다는 깊이 있는 학습을 통해
창의력을 기를 수 있도록 정리하였습니다. ‘재우쌤의 창의여행’만의 이야기를 통해 좋은 교육 자료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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